디자인오적어

응답하라...

사람. 사랑

여행 이야기

고려장...

아마존프로(까굴이) 2022. 3. 7. 16:47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면 고려장 설화와 관련된 것으로 1919년에 발행된 <전설의 조선>이라는 책이 먼저 눈에 띈다. 이것이 고려장 설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단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그 시기가 제일 빠르다. 이 책의 지은이는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유인 미와 타마키(三輪環)로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채집한 조선의 구비전설(口碑傳說)이 수록된 가운데 말미에 동화부분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 '불효식자(不孝息子)'라는 대목이 보인다. 그 내용은 "늙은 제 아비를 지게에다 지고 산 속에 버리려는 어떤 사내가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아들보고 그 지게가 필요 없으니 버리라고 하자, 그 아들이 하는 말이 나중에 아버지도 늙으면 필요할 텐데 또 써야 하니까 버리지 못한다고 하매 곧 크게 뉘우치고 버린 제 아비를 다시 모셔왔다"는 바로 그 얘기다.

이 얘기는 1924년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동화집>에도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곧이어 1926년에는 나카무라 료헤이(中村亮平)가 정리한 <조선동화집>에도 약간 내용을 달리하여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거듭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식민통치자들이 고려장 설화를 널리 퍼뜨린 주범일 듯도 하지만 이러한 자료에 수록된 내용은 어쨌거나 실제로 조선 땅에서 통용되던 설화나 전설을 채집한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더 알아 보자면 생계로 인해 부친을 생매장한 사건을 다룬 1924년 9월 13일자 동아일보, 사위가 장인을 생매장한 사건을 다룬 1934년 6월 9일자 조선중앙일보에서도 고려장을 특정 풍속을 뜻하는 낱말로 사용한다.

종합하면 고려장 설화는 구전 설화로서는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를 고려 시대 때 실제 있었던 장례 풍습이라고 일반인들이 두루 믿게 오해하게 된 것은 대략 구한말 이후 부터라고 생각된다. 삼국시대 이후로 조선시대까지 나온 한국의 역사책, 지리서, 수많은 문집들 어디에서도 노인을 산 채로 산에 버리는 고려장 얘기는 찾아볼 수 없으나 이사벨라 비숍 등 조선후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고려장 설화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고(다만 이사벨라 비숍의 기록은 그리피스의 기록을 보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리피스의 기록은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 일제강점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경험한 사람들은 대개 고려장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자기 동네에 고려장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나 굴이 있었다는 기억까지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1800년대 후반에는 고려장=노인을 산에 버린다는 지금과 정확히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의 동화를 모은 조선동화집같은 책을 보면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민간에서 구전될 정도로 이야기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이나 일제강점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설화라면, 최소한 일제강점기보다는 이전에 생긴 것이 분명하다. 설화나 전설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닌 세월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설화, 전설이 생각보다 그리 긴 역사를 지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킬트도 알고보면 그리 오랜 전통이 아니고.) 다만 외국인들의 기록은 한국 방문 여부에 대해서 신빙성 논란이 있고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 설화의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 이전이 아닌 이후에 생긴 설화일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